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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 2026.06.11 · 6분 읽기

AI가 썼지만, 내 이야기 — 세컨드 브레인을 블로그 엔진으로 쓰는 법

위키에 쌓인 raw 대화가 블로그 글이 되는 흐름

방법

방금 블로그 글감 하나가 떠올랐다. “세컨드 브레인 활용하기.” 괜찮다 싶었는데, 몇 초 뒤에 까먹었다.

원래라면 거기서 끝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그냥 증발하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있다. 그런데 이번엔 “방금 뭐 생각났는데 까먹었네”라고 흘렸더니, 5분 뒤에 그 아이디어가 돌아왔다. 내 세컨드 브레인이 들고 있었으니까.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이 바로 그 복구된 아이디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글의 초안은 내가 쓴 게 아니다 — AI가 썼다. 그런데도 이건 내 이야기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가 오늘 하려는 얘기다.

그 얘기 전에, 세컨드 브레인이 뭔지부터. 거창한 건 아니다. AI랑 나눈 대화, 일하다 내린 결정, 며칠씩 헤맨 기록을 흘려보내지 않고 한곳에 모아두는 ‘두 번째 뇌’ 같은 거다.

내가 이걸 만든 건 결국 흩어진 맥락을 한곳으로 모으고 싶어서였다. LLM은 어제 나눈 대화를 오늘이면 기억하지 못한다 — 그 약점을 메우려는 거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많은 기록을 정리하고 다루는 일 자체는 또 LLM이 제일 잘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흩어진 걸 정리해서 index 하나만 만들어두면, 언제든 다시 꺼내 쓰는 내 자산이 된다. 이 글에선 그 ‘쌓아온 기록 더미’ 정도로 생각하면 충분하다.

”AI로 블로그 써줘”의 함정

AI한테 글을 맡기는 가장 흔한 방식은 이렇다. “세컨드 브레인 활용법으로 블로그 글 하나 써줘.”

그러면 그럴듯한 게 나온다. 노션이 어떻고, 옵시디언 설정이 어떻고, 제텔카스텐이 어떻고. 문제는 — 그거 전부 검색하면 나온다. 위키피디아를 한 번 더 쓴 글, 누가 써도 똑같은 글. 읽는 사람 입장에선 굳이 내 글을 읽을 이유가 없다.

이게 commodity(흔한 것)다. AI는 흔한 걸 아주 잘 만든다. 세상에 이미 널린 패턴을 평균 내서 뱉는 게 LLM이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진짜 지식은 검색되지 않는다

언젠가 위키 정리 기준을 손보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블로그나 유튜브 소재는 결국 내가 작업한 것들이 스토리가 될 테니까. 내가 경험한 내용은 진짜 지식일 테니까, 그냥 개념 설명만 하는 거랑은 차별화될 거 같애.”

핵심이 여기 있다. 개념 설명은 검색하면 나오지만, 내가 왜 이 길을 걷게 됐는지는 나만 말할 수 있다.

세컨드 브레인을 왜 시작했는지, 거기서 왜 디스코드 봇으로, 다시 왜 위키 앱 구상으로 번졌는지 — 이건 구글에 없다. 내 머릿속과, 그동안 쌓아둔 대화 기록에만 있다. 이게 moat(해자)다. 흔한 것의 정반대편.

그러니 콘텐츠를 만들 때 던지는 질문이 바뀐다. “이 주제로 뭘 쓰지?”가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해 내가 실제로 겪은 게 뭐지?”

시작과 끝은 내가, 가운데는 AI가

내가 글을 쓰는 순서는 사실 위 질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내가 쥐고, 가운데 살 붙이는 일만 AI한테 맡긴다.

① 이야기의 시작은 나로부터. 무슨 얘기를 할지, 어떤 시선으로 풀지는 내가 정한다. AI한테 “세컨드 브레인 활용하기, 근데 그걸 글 쓰는 엔진으로 쓰는 시선으로”처럼 어디서 출발할지를 건넨다. 주제만 툭 던지면 일반론으로 새지만, 시선을 같이 주면 이야기에 방향이 생긴다.

② 가운데는 AI가 채운다. 여기서 AI가 하는 일은 빈칸을 일반 지식으로 메우는 게 아니다. 내가 그동안 쌓아둔 기록 — 원본 대화와 정리해둔 위키 — 에서 실제로 있었던 장면과 내가 했던 말을 찾아와 글의 살로 붙이는 거다.

이때 요약본만 읽으면 곤란하다. 정리된 글은 깔끔한 대신, 원래 말투와 뉘앙스, 그때의 온도가 빠져 있다. AI가 슬그머니 “지어내기” 시작하는 게 보통 여기서다. 그래서 원본 대화까지 통째로 읽힌다. 앞에서 인용한 “~차별화될 거 같애” 같은 날것의 말이 글에 살아남는 것도 그래서고.

③ 이야기의 끝맺음도 나. AI가 가져온 초벌을 내 눈으로 다시 읽는다. 틀어진 사실을 바로잡고, 어색한 문장을 내 말투로 손보고, 슬쩍 지어낸 게 있으면 걷어낸다. 이 마무리는 글이 저장돼 있는 노트 앱(Obsidian)에서 한다. 쓰는 건 AI지만, 첫 시선과 마지막 손길은 내 거다. 이 끝맺음을 거쳐야 비로소 “AI가 썼는데 내 이야기”가 된다.

단, 쌓인 게 없으면 시작도 못 한다

이 방식엔 조건이 하나 붙는다. 꺼내 쓸 기록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

②에서 AI가 끌어올 재료가 없으면 결국 다시 일반론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이 방식의 진짜 연료는 글솜씨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다. AI랑 나눈 대화, 며칠 헤맨 기록, 그때그때 내린 결정 — 이런 걸 흘려보내지 않고 한곳에 모아두는 게 사실상 8할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법보다, 평소에 흘려보내지 않고 모아두는 습관이 먼저다.

안 맞는 주제? 그건 애초에 안 떠오른다

처음엔 ‘경험 없는 주제엔 안 통하겠지’ 싶었는데, 뒤집어 보니 아니었다. 내가 안 해본 일은 글감으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떠올랐다는 건 이미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니까. 결국 이건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내 할 말을 꺼내는 작업이라, 주제 한 줄만 던지면 글이 알아서 모양을 잡는다.

딱 하나, 마지막 손질(③)만은 건너뛰면 안 된다. AI가 가져온 걸 그대로 두면 슬쩍 지어낸 게 섞이니까.

실제로 겪었다. 예전에 6시간 만에 미술관 사이트를 만든 이야기를 AI한테 뽑게 했더니, “원래 쇼핑몰로 크게 기획했다가 규모를 줄여서 빨랐다”는 식으로 써놨더라.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 그냥 에이전트로 개발하는 것 자체가 빨랐던 거다. 그때 ②에서 원본 대화를 안 읽히고 요약만 건넸더니, AI가 비어 있는 ‘왜’를 그럴듯하게 메워버린 거다. 말을 지어내는 게 LLM의 본성이라, 원본을 안 보여주면 이렇게 빈칸을 상상으로 채운다. ③ 검수에서 잡았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나갔으면 거짓말이 박힌 글이 될 뻔했다.

그래서

다음에 AI한테 글 써달라고 하기 전에, 순서를 한 번 뒤집어 보면 좋겠다. 글쓰기 도구부터 찾지 말고, 내 경험부터 한 곳에 쌓는 것.

그게 쌓이면 AI는 “검색하면 나오는 글”이 아니라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쓴다. 시작은 정말 거창할 필요 없다 — 오늘 AI랑 나눈 대화 하나를 버리지 않고 저장하는 것부터.

이 글이 그 증거다. 까먹은 아이디어 하나가, 쌓아둔 기록 덕에 5분 만에 한 편의 글이 됐으니까.


세컨드 브레인 시리즈 — EP1·EP2 구축편 · EP3 통합편 · EP4 디스코드편 · EP5 활용편(이 글) · EP6 앱편

방법: 세컨드브레인 자동화 · 배경: LLM과 문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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