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새암 미술관을 만들면서 한 번에 코드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게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다. 직전 프로젝트인 trading_mvp를 하면서 몸으로 배운 거다. 거기서는 화면 작업을 두 번 하게 됐는데, 다 만들고 나서 수정하니까 비용이 두 배로 들었다. 고치느라 정말 애먹었다. 한새암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경험 이후로 한새암은 처음부터 단계를 나눠서 진행했다.
순서는 이랬다.
먼저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전시회에 들어온 느낌”이라는 방향, 어머니가 직접 작품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 서예관·민화관·캘리관 세 전시실 구조. 이걸 문서로 먼저 뽑고, 코드는 아직 없었다.
그다음이 시안이다. AI한테 바로 “만들어줘”가 아니라 “홈 화면 시안 여섯 개 보여줘”를 먼저 했다. 여섯 개를 보고 하나를 골랐다. 고른 뒤에 주요 화면 — 갤러리 목록, 작품 상세, 전시관 페이지 — 을 구체화했다. 그 다음에야 동작하는 코드를 요청했다.
실제 개발 수정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 내가 관리자 페이지에서 작품 관리만 되면 된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쓰시면서 이력이나 다른 항목도 직접 관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관리자 기능을 추가·수정하긴 했는데 — 그건 방향이 틀린 게 아니라 요구사항이 늘어난 거였다. 사이트 자체가 단순했기 때문에 그 수정도 크지 않았다. trading_mvp처럼 구조를 뒤집는 수준의 수정은 없었다.
왜 단계마다 끊었냐면 — 앞 단계가 틀어지면 뒤가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
시안을 보기 전에 코드부터 만들면, 마음에 안 드는 걸 고치는 데 코드 수정 비용이 붙는다. 시안 단계에서 “이 방향이 아니다”를 걸러내면, 코드는 이미 확인된 방향으로만 만들면 된다. 사람이 개입할 지점을 앞에 두는 거다.
로그를 보면 실제 진행이 보인다.
06-03 Next.js 초기 구축 — 공개 사이트 + 관리자 CMS
06-04 방명록 관리 기능 추가
06-05 홈 작가 소개 경력 수정 (어머니 피드백 반영)
06-06 강의·전시 문의 카드 제거
06-08 운영 배포
06-13 한·영 토글 추가 (263칸 번역 완료)
06-05에 “어머니 피드백 반영”이 있다. 이게 단계를 나눈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다 만들고 나서 피드백을 받으면 그 수정이 크다. 중간에 어머니와 확인하면서 방향을 맞췄기 때문에 수정이 한 줄짜리로 끝났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백엔드도 이렇게 할 생각이다.
한새암은 프론트 위주라 이 방식이 자연스러웠는데, 사실 백엔드도 마찬가지다. API 설계를 다 짜고 구현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 모델만 먼저 보고 확인받고, 그다음 API 목록 보고 확인받고, 그 다음에 코드. 중간마다 사람이 볼 수 있으면 다시 짜는 비용이 사라진다.
한새암에서 비교적 싸게 배운 거다. trading_mvp에서는 비싸게 배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