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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26.06.11 · 4분 읽기

어머니 온라인 미술관을 6시간 만에 만든 법

퇴근길 기획 1시간, AI가 허락도 없이 먼저 지어버린 갤러리, 그리고 집서버 배포까지

이야기

어머니는 30년 넘게 서예, 민화, 캘리그라피를 하셨는데 작품이 전부 집에만 있었다. 오프라인 전시도 꾸준히 하시고 협회 임원 활동도 하시는 분인데, 온라인에는 흔적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6시간이 걸렸다. 세 단계였다.


1단계 — 퇴근하면서 1시간: 기획

퇴근길에 Claude Chat을 열고 기획 회의를 시작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전시회에 실제로 들어온 느낌.”

한참 얘기하다 보니 이런 말이 나왔다. “그냥 작품 쭉 나열하면 포트폴리오고, 들어서는 순간 공간에 들어온 것 같으면 전시회죠.”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뭔지를 짚었는데, 결론은 네 가지였다.

여백과 호흡 — 진짜 미술관은 한 벽에 작품 한 점씩 걸려 있다. 그 여백이 “이 작품에 집중하세요”라는 신호다. 들어가는 길 — 첫 화면에 바로 작품을 들이밀지 않는다. 대표작 하나가 은은하게 떠 있고, 스크롤하면 비로소 작품이 등장하는 식. 걷는 느낌 — 스크롤할 때 작품이 스르륵 페이드인되면 벽을 따라 걷다 다음 작품을 마주치는 그 느낌이 난다. 명패 — 작품 옆에 제목, 재료, 크기, 연도 한 줄. 그것만으로 그냥 사진이 아닌 “전시된 작품”이 된다.

전시관은 세 방으로 나눴다. 서예관 → 민화관 → 캘리관. 서예라는 뿌리에서 시작해서, 그림으로 번져나가고, 전통이 현대로 이어지는 동선이다.

기획 중에 발견한 것도 하나 있었다. 어머니 작품마다 찍혀 있는 빨간 낙관 — 그게 어머니의 로고였다. 먹색, 한지색, 낙관 빨강. 이 세 가지로 사이트 전체 팔레트가 완성됐다.

1시간 만에 기획 문서 하나가 나왔다.


2단계 — Claude Design에 올렸더니 먼저 지어버렸다

기획 문서와 작품 사진을 Claude Design에 올렸다. 스택을 뭐로 할지 상의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메시지를 보니 이미 41점짜리 갤러리 HTML이 통째로 완성돼 있었다. 서예관 15점, 민화관 16점, 캘리관 10점. 입구작까지 잡혀 있었다. “만들어 달라고 한건 아니었는데 ㄷㄷㄷ”라는 말이 나왔다.

AI가 먼저 지어버린 덕분에 방향이 빨리 잡혔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정적 HTML로는 어머니가 직접 작품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퍼블리싱 파일을 레퍼런스로 삼아, Chat에서 만든 기획 문서와 함께 Code에 구현을 요청했다. 어머니가 “이번 달엔 이 작품들로 기획전 해줘”라고 카톡으로 보내주시면 직접 올릴 수 있는 관리자 CMS가 필요했다. Next.js + Prisma + SQLite + admin CMS 구조로 구현을 요청했고, 어머니가 관리할 수 있는 요구사항을 추가했다.

어머니가 큐레이터고 나는 설치팀인 셈이다.


3단계 — 집서버 배포

배포는 이미 주식앱을 올려둔 집서버를 그대로 활용했다. Caddy에 도메인 블록 하나 추가하고, DuckDNS로 IP 추적해서 CNAME을 연결했다. 첫 배포에서 작품 ID 중복 에러가 났는데, ID 입력란을 제거하고 제목 기반 자동 생성으로 바꾸니 해결됐다. push = 배포 파이프라인은 주식앱에서 쓰던 방식 그대로 얹었다.


왜 6시간이 가능했나

세 가지가 맞물렸다.

첫 번째는 도구가 역할을 나눴다. 기획은 Chat, 프로토타입은 Design, 구현은 Code. 각 도구가 잘하는 단계에서만 쓰이고 다음으로 넘겼다.

두 번째는 단순한 사이트였다. 어머니 관리 기능이라는 요구사항이 있었지만, 상설 전시 + 기획전이라는 구조 덕분에 기능이 복잡해지지 않았다. 미세조정은 있었지만 범위가 작았다.

세 번째는 이미 있는 인프라. 도메인 세팅, 서버 구성, 배포 파이프라인 — 주식앱을 만들면서 익혀둔 것들을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 사이트의 목표는 하나였다. “보여주는 곳이지 파는 곳이 아니다.” 쇼핑몰을 먼저 만들어봤다가 접은 경험이 있어서 더 또렷해진 방향이기도 하다. 작품에 가격표가 없어도 된다. 충분히 보고 난 다음에 “이거 소장하고 싶다”는 사람이 문의를 보내는 흐름이 갤러리답다.

가족 중에 작품 가진 분이 있다면, 갤러리 사이트보다 먼저 “어떤 느낌으로 들어오게 할까”를 정해보세요. 여백 하나, 페이드인 하나가 포트폴리오를 전시관으로 만든다. 그리고 기획 문서 하나만 제대로 만들어서 AI에 던지면 — AI가 나머지를 먼저 지어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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