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블로그 파이프라인을 만들었을 때 단계가 두 개였다. seed, 그리고 draft.
주제를 정해서 seed 파일로 등록하면 AI가 바로 초안을 써주는 구조. 단순하고 빠를 것 같았다. 실제로 빠르긴 했다. 근데 결과가 계속 내 생각이랑 달랐다.
뭐가 달랐냐면
AI가 써준 초안을 열어보면 글은 분명히 쓰여 있었다. 주제도 맞고 문장도 깔끔했다. 근데 읽다 보면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가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왔거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문단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씨드에서 바로 드래프트하니까 너무 내 생각이랑 싱크가 안 맞아.”
이 문제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제 문제는 seed에 방향이 없다는 거였다
seed 파일 안에는 주제와 연결된 raw 파일 경로가 들어 있었다. 소재 메모도 조금씩 붙어 있었다. 근데 “이 글의 각도”가 없었다.
각도가 없으면 AI는 그 주제에 대해 가장 일반적인 걸 쓴다. seed 파일에 “블로그 파이프라인”이라고 적혀 있으면, AI는 블로그 파이프라인이 뭔지,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쓴다. 내가 쓰고 싶은 건 “왜 brief가 필요했는지”였는데.
그러니까 문제는 AI가 못 쓴 게 아니었다. seed 파일이 방향을 담고 있지 않았던 거다. AI는 주어진 정보로 가장 합리적인 초안을 썼고, 나는 머릿속에 있는 각도를 AI에게 전달하지 않은 채로 결과물이 다르다고 불만스러워했다.
brief를 끼워 넣었다
파이프라인에 단계를 하나 추가했다. seed 다음, draft 이전에 brief.
의 역할은 방향 확정이다. 각도(angle)와 핵심 메시지(message), 줄거리(outline)를 잡는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람이 승인해야만 draft로 넘어간다.
실제 흐름은 이렇다. 소재 메모가 있으면 AI가 그걸 읽고 brief를 바로 제안한다. 소재 메모가 없으면 각도 후보를 세 개 제시한다. A는 why 중심, B는 how 중심, C는 삽질이나 반전 중심, 서로 실질적으로 다른 관점으로. 내가 하나를 고르거나 수정해서 방향을 확정하면 그때 draft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 승인이 게이트다. AI가 알아서 brief를 만들어서 draft까지 혼자 가는 게 아니다. 내가 각도를 보고 OK하지 않으면 멈춘다.
파이프라인이 소프트웨어처럼 생겼다
brief를 끼워 넣고 보니, 파이프라인이 소프트웨어 상태 머신하고 닮았다.
seed → brief → draft → published. 각 상태에 진입 조건이 있다. brief는 각도·메시지·줄거리가 있어야 하고 사람이 승인해야 한다. draft는 brief가 있어야 쓸 수 있다. published는 사람이 검토한 draft만 올라간다.
파일 구조도 단순하다. seed, brief, draft는 같은 파일이다. export/slowloop/content-drafts/ 안의 하나의 md 파일에서 status 필드만 바뀐다. 상태가 바뀔 때마다 frontmatter에 필드가 쌓인다. brief 단계에서는 angle, message, outline이 붙는다. 파일을 여러 개 만들지 않으니 어디가 최신인지 헷갈릴 일도 없다.
처음부터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설계하자”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면 고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지금은 어떻게 돌아가나
brief 승인 없이 draft 요청이 들어오면 스킬이 거절한다. 의도적으로 강제화한 거다.
스킬이 brief 단계를 담당한다. 실행하면 seed 파일을 읽고, 소재 메모를 기반으로 brief를 제안하거나 각도 후보를 세 개 내놓는다. 내가 OK하면 seed 파일의 status가 brief로 바뀌고 angle, message, outline 필드가 추가된다. 그다음에 /blog-draft를 실행할 수 있다.
raw 파일에 없는 내용으로 각도를 만들지 않는 것도 규칙으로 박아뒀다. 근거 없는 각도를 잡으면 draft 쓸 때 막힌다. 소스를 읽고 실제로 있는 소재에서 각도를 잡아야 한다는 조항이 스킬 안에 있다.
이 구조를 갖추고 나니, AI가 쓴 초안을 열면 대체로 내가 원하는 방향에 가깝게 나온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방향 자체가 틀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결국 이 한 가지다. AI한테 각도 없이 주제만 던지면 싱크는 안 맞는다. 내가 뭘 전달하고 싶은지를 먼저 정리한 다음 AI한테 넘겨야 한다. brief는 그 정리를 강제하는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