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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26.06.13 · 5분 읽기

에이전트 개발 한 달, 나는 개발자가 아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만들고 있는데 자꾸 딴생각이 든다면, 그거 딴생각 아니다

이야기

에이전트 개발 한 달, 나는 개발자가 아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만들고 있는데 자꾸 딴생각이 든다면, 그거 딴생각 아니다


오프닝

한 달 전, 개발하는 동안 머릿속 70%는 이런 생각으로 차 있었다. 이 기능 어떻게 짜지. 여기서 왜 에러가 나지. 이 API를 어떻게 붙여야 하지.

지금은 다르다. 만들고 있는데 자꾸 딴생각을 한다. 이 앱이 왜 필요한가. 사용자가 진짜 원하는 게 뭔가. 이 기능이 핵심 가치에 연결되는가.

처음엔 이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집중이 안 되는 건가. 근데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딴생각이 아니었다. 레벨이 올라가고 있던 거였다.


시작은 단순했다

주식 포트폴리오 앱과 마이위키, 두 개를 거의 동시에 개발하기 시작했다. 둘 다 이유는 같다. 직접 쓰려고. 주식 수익률을 제대로 추적하고 싶었고, AI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지식을 정리해서 다시 꺼내 쓰고 싶었다.

처음엔 구현이 재밌었다. AI랑 같이 코드 짜는 게 신기했고, 하루에 기능 하나씩 붙어나가는 게 좋았다. 직접 손으로 구현하는 재미도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작업하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 때문에 작업 환경이 정말 많이 바뀔 것 같다. 구현이 해결되다 보니까 도메인 지식이나 비즈니스를 아는 게 더 중요해진 것 같다.

마이위키를 개발하면서 소화 기준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AI가 어떤 대화를 남기고 어떤 건 버릴지” — 이건 알고리즘으로 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가 “이 지식이 나에게 가치 있는가”를 직접 판단해야 했다. 코드를 짜는 게 아니라 기준을 세우는 거였다. 그때 처음으로 선명하게 느꼈다. 구현이 쉬워지자, 구현 뒤에 숨어 있던 진짜 결정들이 드러난다고.


”AI가 내 생각과 다르게 만든다”

에이전트에게 구현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불편함이 생겼다.

AI가 내 생각과 다르게 만드는 경우가 꽤 많았다. 처음엔 지시를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컨벤션을 더 구체적으로 주고, 컨텍스트를 더 많이 넘기려고 했다. 근데 계속 반복됐다.

그러다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느낀다는 건, 내 머릿속에 분명한 상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이디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기준은 있었다. “이게 아닌데”를 느끼는 사람은 “이래야 하는데”가 있는 거다.

완전 자동화도 해봤다. 결과는 별로였다. 품질이 원하는 수준에 안 됐다. 그래서 스스로 결론 내렸다. 주요 비즈니스는 내가 개입하고 나머지는 자동화한다.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직접 해보고 나서 나온 결론이었다.


병목이 위로 이동했다

주식책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식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앱을 만들어야겠다.

당시엔 그냥 내 성향이려니 했는데, 나중에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어떤 분야를 봐도 자동으로 “이걸 도구로 만들면 어떨까”로 변환되는 사람. 제작자 기질.

그리고 이게 AI 시대와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개발자가 매니저가 되고, 매니저가 사업가가 된다. 각 레이어가 하는 일의 본질이 다르다.

  • 개발자: “어떻게 만들지” (구현)
  • 매니저: “누가 / 무엇을 만들지” (조율, 우선순위)
  • 사업가: “왜 / 무엇을 위해 만들지” (방향, 가치)

AI가 맨 아래 레이어를 거의 공짜로 만들어버렸다. 구현이 쉬워지자, 진짜 막히는 지점이 드러났다. 뭘 만들지를 모르겠다는 것. 구현이 막히던 자리에 “왜 만드는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요즘 개발할 때 뭐가 제일 막혀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두 앱을 동시에 개발하면서 구현 자체는 막히지 않던 때였다. 근데 솔직하게 답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아이디어가 없다.” 이미 만들고 있는데 다음에 뭘 만들지 모르겠다는 게 제일 막힌다는 거였다. AI가 맨 아래 레이어를 처리해주니까, 그 위에 원래부터 있던 진짜 병목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거였다. 이 전환이 개발자 역할 전체를 어떻게 바꾸는지는 따로 정리해뒀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것

구현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다. 구현을 아는 채로 위로 가는 것이다.

주식 포폴앱을 만들면서 한투 API 연동과 복잡한 손익 계산이 얽혔을 때, AI한테 완전히 맡기면 틀렸다. 금융 계산은 1원만 틀려도 안 된다. 그래서 정책을 먼저 정의했다. 평단가는 이 공식으로, 부분 매도는 이렇게, 동기화 충돌은 이 규칙 우선. AI는 그걸 코드로 옮기기만 했다.

그 순간 역할이 명확해졌다. 내가 하는 일은 구현이 아니라 정책 설계였다. 그리고 그 정책을 제대로 설계하려면 도메인을 알아야 했다. 운 좋게 회계 시스템 운영을 해봤던 경험이, 주식 앱 만드는 데 직접 연결됐다.

Claude Design 토큰을 아끼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기획을 했던 적이 있다. 토큰이 주간으로 리셋되니까 그걸 쓰려고 강제로 기획 시간을 만든 거다. 나중에 그 한도가 Claude.ai, Claude Code와 통합되면서 그 루틴이 사라졌는데, 돌아보면 그게 토큰 아까워서가 아니라 “기획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던 것 같다. 외부 장치가 나를 강제로 위 레이어로 끌어올려주고 있었던 거다.


할 수 있는 게 바뀐 세상

재미의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게 바뀌었다. 이젠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다.

AI로 만드는 것도 재밌고, 스스로 구현하는 것도 여전히 좋다. 근데 그 위에 더 큰 감각이 생겼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막히지 않는다는 해방감.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를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됐다. 근데 주식 앱 AI 개발을 시작하고 나서는 장소 제약이 사라졌다. 노트북 들고 다니면서, 카페든 어디든 편한 데서 펼쳐놓고 했다. 공부는 안 됐는데 개발은 됐다. 처음엔 그냥 내가 게으른 건가 싶었다. 이제는 다르게 읽힌다. 만들면서 배우는 사람은, 앉아서 공부하는 방식으로는 레벨업이 안 되는 거였다.


마무리

AI로 뭔가 만들고 있다면, 이번 주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게 코드였는지, 제품이었는지 한 번 점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코드가 70%면 아직 구현 단계에 있는 거다. 제품이나 사용자, 왜 이게 필요한가가 더 많이 돌아가고 있다면, 그게 나쁜 신호가 아니다. 레벨이 올라가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전환이 어색하고 집중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아마 나처럼 만들고 있는데 자꾸 딴생각하는 중일 거다.

그거, 딴생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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