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lp
← 블로그
이야기 2026.06.11 · 4분 읽기

AI랑 한 대화가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세컨드 브레인을 만들었다

한 달치 AI 대화가 남긴 것 — raw와 wiki를 나눈 이유

이야기

AI랑 한 대화가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세컨드 브레인을 만들었다

세컨드 브레인 시리즈 — EP1·EP2: 구축편


어느 날 Claude랑 한 시간 넘게 프로젝트 구조를 뜯어고쳤다. 꽤 괜찮은 결론이 나왔던 것 같았는데, 다음 날 그 대화를 다시 열어보려니 스크롤을 한참 내려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같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그때 든 생각이 하나였다. “이게 그냥 사라지고 있구나.”

시간을 들인 대화, 며칠씩 고민한 결정, 삽질하고 나서 얻은 교훈 — 전부 채팅 목록 어딘가에 파묻혀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AI는 어제 내가 한 말을 오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당연한 설계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까웠다. 이왕 쌓이는 거라면 뭔가 형태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세컨드 브레인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


가장 먼저 정한 것: raw와 wiki를 나눈다

처음에는 “다 한 폴더에 넣으면 되지 않나” 싶었다. 정리본이든 원본이든 일단 모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써보니 문제가 생겼다. LLM이 여러 대화를 합쳐서 정리해두면, 나중에 “이게 내가 실제로 한 말인가, AI가 요약하다 각색한 건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원본이 어딨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딱 하나 원칙을 세웠다. raw는 내가 소유하고, wiki는 LLM이 소유한다.

raw/는 원본 대화, 날것의 메모,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소스다. 이름도 바꾸지 않고, 내용도 편집하지 않는다. 진실의 원천이니까. wiki/는 LLM이 읽고 정리한 합성물이다. 틀렸으면 wiki를 고치면 되는데, raw는 그대로 살아있다.

이 분리 덕분에 LLM이 잘못 합성해도 원본이 안전하다. “이게 맞는 말이었나?” 싶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안심이 됐다.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버리나

처음에는 모든 대화를 다 정리하려고 했다. 당연히 못 따라갔다. 기준이 필요했다.

정리하는 기본값은 “AI 대화 = 뭔가 해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다. 잡담이 아니면 일단 뭔가 남길 게 있다는 뜻이다. 버리는 건 세 가지다. 순수 잡담, 구글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how-to, 한 번 쓰고 끝나는 일회성 계산.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게 하나 있다. “구글 검색하면 나오는 거”라도 내 맥락에서 직접 체득한 노하우는 남긴다. 같은 기술 주제라도 내가 이 상황에서 왜 이 선택을 했는지는 구글에 없다. 일반 지식은 commodity고, 내 경험은 moat다. 이 구분이 위키의 방향을 정했다.


자동화는 어디까지 해야 하나

수집은 자동화하고 싶었다. 매일 쌓이는 Claude Code 세션을 직접 정리하면 지속이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스크립트를 짜서 매일 저녁 22시에 자동으로 raw에 적재하게 했다. 이건 잘 됐다.

문제가 생긴 건 소화(digest)였다. “이것도 자동화하면 편하겠지”라는 생각에 Hermes 서버에 cron을 하나 더 달아서 자동 소화를 돌렸다. 결과는 위키 품질이 오히려 내려갔다. LLM이 판단 없이 돌아가니까 잡음이 늘었다. 결국 cron을 폐지하고 소화는 내가 시킬 때만 하게 되돌렸다.

소화는 판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기존 페이지와 연결되는지, 버릴지 남길지 — 이건 기계적으로 돌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집은 자동, 소화는 수동.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 자동화 구조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별도로 정리해뒀다.


오래 하려면 시스템이어야 한다

세컨드 브레인을 만들기 전에는 “의지로 버텨야지”라고 생각했다. 대화 끝나면 요약해서 메모하고, 결정하면 어딘가 적어두고. 한두 번은 됐는데, 습관이 되진 않았다.

수집이 자동화되고 나서 달랐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찰이 없어지니까 쌓이기 시작했다. 그 쌓인 것들이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 — 이게 진짜 차이였다.

raw/wiki 분리부터 시작해보면 된다. 원본은 손대지 않고, 정리본은 따로. 거기서 시작하면 나머지는 차근차근 붙는다.


세컨드 브레인 시리즈 — EP1·EP2 구축편(이 글) · EP3 통합편 · EP4 디스코드편 · EP5 활용편 · EP6 앱편

배경: LLM은 새 세션마다 당신을 처음 만난다 · 방법: 세컨드브레인 자동화 구조

댓글